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향곡 제3번(베토벤) (문단 편집) == 기타 == * 나폴레옹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평생 풀지 않았던 베토벤은 후일 1813년 [[이베리아 반도 전쟁|비토리아 전투]]에서 영국의 [[아서 웰즐리|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군을 격파하자 크게 기뻐하며 '웰링턴의 승리'(작품번호 91)라는 관현악곡을 작곡했다. 한편으로 자신의 중요한 후원자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평생 결별해버린 것도 바로 나폴레옹 때문이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인간관계]] 항목 참고. * [[프란츠 리스트]]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했는데, 이 영웅 교향곡 편곡은 특히 기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상당히 연주하기 어려운 난곡으로 알려져 있다. * 이 곡을 애호한 집단 중 하나로 '''[[나치당]]'''이 있다. [[교향곡 제9번(베토벤)|"합창"교향곡]]과 함께 각종 나치당 행사에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이 곡 특유의 힘 있고 파격적인 내용이 나치당이 좋아하는 영웅주의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 물론 나치는 베토벤이 왜 나폴레옹의 행위에 분노했는지는 [[그런거 없다|신경쓰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을 지지한 [[공화주의]]자인 베토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피꺼솟|무덤에서 일어날 짓.]] * 2악장의 경우 유명 인사의 장례식에서 연주되기도 하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경우 현임 혹은 전임 예술 감독이었던 지휘자가 작고한 경우 추도의 의미로 후임 예술 감독 혹은 그에 준하는 지휘자가 이 2악장을 지휘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작고한 지휘자 만을 위한 의식이라 무대의 막을 내리고 관객석도 완전히 비운 상태로 오페라극장 전속 관현악단과 지휘자만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공연한다. 다만 2000년대 이후에는 온라인 중계 기술의 발달 덕분에 1968~86년 동안 예술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2014년에 작고한 직후 (당시) 예술 감독이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했을 때는 극장 밖에 모인 추모객들을 위해 오케스트라 피트 주변에 세팅한 무인 카메라들로 연주 광경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를 통해 중계한 바 있다. * 이 곡을 광고 음악으로 쓴 사례로는 한국의 [[현대 에쿠스]] 광고가 있다. * [[앨프리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사이코(영화)|사이코]]>(1960)에서 영화 말미에 실종된 동생의 흔적을 찾고자 언니가 노먼 베이츠의 집을 몰래 살펴보는 장면에서 턴테이블에 걸린 음반의 클로즈업 장면(아래)이 나오는데 바로 '영웅'교향곡 음반이다.(지휘자가 Claudio Caselli로 나온다.) [[파일:Eroica record(Psycho).png|type=w1200]] * [[Windows Vista]]에 [[Microsoft Windows/음악 샘플|음악 샘플]]로 포함되었다. [[분류: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작품]][[분류:나폴레옹 보나파르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